“본인은 서운해 했다”…‘V1 주역’ 국대 에이스의 불펜 전환 뒷이야기
2021.11.21 11: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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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후광 기자] 올 시즌 퀄리티스타트 1위 투수를 한국시리즈에서 전격 불펜으로 기용한 KT 위즈. 사령탑은 어떻게 선수를 설득했고, 선수는 어떻게 이를 받아들였을까.

이강철 감독은 지난 13일 2021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국가대표 에이스이자 팀의 토종 에이스 고영표의 깜짝 불펜행을 밝혔다. 이 감독은 “선발투수가 5이닝 정도 막아주면 6~8회가 불안하기 때문에 그 때 활용을 생각하고 있다”며 변칙 작전을 꺼내들었다.

고영표는 군에서 돌아와 올 시즌 26경기 11승 6패 평균자책점 2.92의 호투를 선보였다. 체인지업이라는 확실한 결정구와 이닝 소화력을 앞세워 괴물투수 아리엘 미란다(두산), 동료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와 함께 퀄리티스타트 부분 공동 1위에 올랐다. 불펜진은 이대은, 주권, 박시영, 조현우, 김재윤 등 자원이 풍부했기에 당연히 한국시리즈 선발 등판이 예상됐다.

그러나 이 감독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선발투수 바로 뒤에 토종 에이스가 나오니 이보다 든든할 수 없었다. 고영표는 15일 2차전과 17일 3차전, 18일 4차전에 차례로 구원 등판해 3경기 2홀드 평균자책점 3.86(4⅔이닝 2자책)의 호투를 펼치며 팀의 통합우승 주역으로 우뚝 섰다. KT의 우승 후 고영표의 불펜 전환이 신의 한 수 였다는 평가가 뒤따른 이유다.

 

[OSEN=고척, 지형준 기자]KT 고영표, 이대은, 배제성이 우승 메달을 깨무는 시늉을 하고 있다. 2021.11.18 /jpnews@osen.co.kr



다만 고영표를 불펜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순조롭진 못했다. 사실 퀄리티스타트 1위 투수의 구원 등판 자체가 상당히 아이러니한 대목이었다. 우승 후 이강철 감독은 “처음에는 (고)영표가 서운해 했다. 선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 됐다”고 털어놨다.

사령탑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큰 경기는 공이 빨라야 한다. 영표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두산 상대로 두 바퀴 정도 돌면 부담스러웠다. 데이터 팀장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결과 6~8이닝을 맡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지론 아래 선수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이 감독은 고영표에게 한 번 더 부탁을 한 뒤 포수 장성우에게도 이 같은 플랜을 전하며 설득을 유도했다.

감독과 포수가 함께 설득에 나선 결과 선수의 마음이 마침내 바뀌었다. 이 감독은 “(장)성우도 영표에게 이야기를 했다. 성우 역시 영표의 불펜행이 맞다는 의견을 전했다”며 “사실 본인이 용납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면 부담이 된다. 다행히 그래도 영표가 마음을 바꿨고, 나 역시 좋은 생각으로 영표를 기용할 수 있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KT는 결국 지난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두산을 시리즈 전적 4승 무패로 꺾고 감격의 첫 통합우승을 맛봤다. 그리고 그 뒤에는 토종 에이스 고영표의 불펜행이라는 헌신이 있었다. 비록 선발은 아니었지만 불펜에서 선발 못지않은 임팩트를 뽐내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우승 세리머니를 즐겼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