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야구’ 꼴찌→1위…한화의 깜짝 변신, 선구안도 단기간 고칠 수 있다
2021.12.20 20:12:38

 

한화 하주석 /OSEN DB



[OSEN=이상학 기자] 타격은 크게 컨택, 파워, 선구안으로 구분된다. 이 중 컨택은 타고난 감각이 크고, 파워는 후천적 노력에 따라 발전할 수 있는 부분으로 나눠진다. 선구안은 그 둘 사이에 있지만 타고난 영역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공의 움직임을 빠르게 인식하는 동체 시력, 쉽게 바뀌지 않는 타자 성향으로 인해 선구안이 단기간 크게 바뀌는 경우는 잘 없었다. 

시즌 전 전망대로 꼴찌로 마친 한화의 2021년 전체적으로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수비 효율을 높인 파격 시프트를 비롯해 전년 대비 상승한 기록들이 꽤 있었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타자들의 볼넷율에 있었다. 올해는 역대 최다 5889개의 볼넷이 나온 시즌이었는데 한화 타자들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했다. 

지난해 볼넷율 10위(8.4%)였던 한화 타선은 올해 이 부문 1위(11.5%)로 확 바뀌었다. 출루율에서 타율을 뺀 ‘순출루율’도 지난해 5위(.075)에서 올해 1위(.097)로 점프했다. 타석당 투구수 역시 5위(3.90개)에서 1위(4.06개)로 반등했다. 팀 타율과 출루율은 2년 연속 10위로 전체적인 타선의 힘은 떨어졌지만 출루에 중점을 둔 눈야구로 변화의 토대를 다졌다. 

정은원은 역대 1번타자 최초로 100볼넷(105개) 시즌을 보내며 한화 눈야구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까지 한 번도 30볼넷 이상 시즌이 없던 하주석은 올해만 51개를 얻어냈다. 노시환의 볼넷율도 지난해 8.5%에서 올해 15.9%로 비약적인 상승을 이뤘다. 포수 2번타자로 자리잡은 최재훈 역시 커리어 최고 볼넷율(15.2%), 순출루율(.130)로 테이블세터 역할을 잘했다. 

야구는 타자가 공을 쳐야 점수가 나는 스포츠이지만 공을 잘 보는 능력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메이저리그 코치 시절 이런 트렌드를 직접 본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타율보다 출루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선구안은 피지컬보다 멘탈이 중요하다. 노력으로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존 전체를 커버하는 것보다 자신이 칠 수 있는 코스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타자가 많지 않은 한화 타선의 현실적인 돌파구이기도 했다. 

 

한화 정은원 /OSEN DB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은 ‘타격 일타강사’ 조니 워싱턴 타격코치는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타자 유형을 막론하고 스트라이크존을 잘 컨트롤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존을 벗어나는 공에 따라나가지 않으면 출루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며 우리 말로 “가운데”를 입에 달고 다녔다. 엉뚱한 공에 속지 말고 가운데 오는 공 위주로 치라는 주문. 선수들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강조했다. 

노시환은 “선수라면 다 아는 기본적인 것이지만 코치님이 거의 세뇌하듯 강조하신다. 가운데 벗어나는 공은 바깥쪽이든 몸쪽이든 쳐도 좋은 타구가 별로 안 나온다. 그런 공에 방망이가 쉽게 안 나가다 보니 볼넷과 출루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훈련 방법도 다양하게 시도했다. 프리 배팅 때부터 카운트별로 상황을 설정해 타자들 스스로 타격 또는 스윙, 의사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했다. 스트라이크존을 9개 구역으로 나눠 번호를 매긴 표식 활용 훈련도 있었다. 타자들은 공에 스윙하지 않고 공이 어느 구역으로 향했는지,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확인하며 존 설정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하주석은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변화가 생겼다.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갈 때도 있지만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통산 4.9%밖에 되지 않았던 하주석의 볼넷율은 올해 8.6%로 상승했다. 반면 헛스윙 비율은 14.8%에서 12.6%로 줄었다. 

시즌 후 워싱턴 코치가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팀을 떠났지만 한화는 올 한 해 타격보조코치로 그와 함께한 김남형 코치를 메인 코치로 승격시켰다. 미국에서 경험을 쌓은 타격보조코치를 영입해 올 시즌 정립한 눈야구의 연속성을 내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waw@osen.co.kr

한화 워싱턴 타격코치가 노시환의 홈런에 열광하고 있다. /OSEN DB